내가 빌렸던 드림위버 책과 포토샵 책은 지난 수요일에 반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너무 귀찮아서 인터넷으로 1주일 연기를 했다. 그래서 오늘 책을 반납하러 가야했다. 컴퓨터 책이 좀 무거운 게 아니라서 따로 쇼핑백에 넣어가기로 했다. 그걸 들고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나와보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 책들을 들고 성남도서관에 가려니 두려웠다. 하지만 가야 했다. 8호선 단대오거리 역에서 내려 50미터쯤 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이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우산을 받쳐쓰고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올라갔다. 그 까마득한 길. 차도/인도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그길. 우산을 앞쪽으로 기울여 쓰고 갔다. 시야는 가려지지만 비도 좀 덜 맞을 뿐더러 들기도 그편이 더 편했다. 하늘아래 길이라고 얼마간 걷고나니 그 길의 끝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왼쪽으로 틀어 200미터 정도 가면 '희망대공원'이라는 글귀가 씌어진 쇠기둥이 있다. 쏟아지는 비가 콸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게다가 나는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쇼핑백이 들어 균형을 잃으면 지탱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여기 오면 자꾸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휴- 언젠가 계단의 개수를 세어보았더니 153개였다. 세어볼 사람은 없겠지만 여기서 보이는 건 139개다.
여기서 맨 꼭대기, 중간에 평평한 공간이 있어 약간 들어가보이는, 화면에서 작게 보이는 계단의 맨 끝까지 올라가면 계단이 14개가 더 있다.
그걸 올라서면 드디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성남도서관.
책 한 권 빌리고 반납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면, 이걸 보고 도립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라고 도서관을 여기다 둔 것일까. 공공기관은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마땅하다. 도서관은 더욱 그렇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따위의 경구를 아무리 새겨도 소용없다. 어릴 적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 그렇게 가르친 어른들이 도서관을 이런 곳에다 만드는 것은 표리부동이요, 위선 아닌가. 이런 도서관에서는 멋진, 봉그랑 여사의 소설이 나오기란 힘들 것이다. 그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이던데, 과연 우리나라 도서관을 배경으로 그게 실감이 날까.
약속이 있던 터라, 서울대 앞 녹두거리로 향했다. 인터넷 헌책방 커뮤니티 '숨어있는책'에서의 한 분과 책을 교환하기로 했던 것이다. 들뢰즈와 바슐라르를 교환했다. 두 책이 다 절판된 책이다. 초창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가수들이 "Why should the Devil has all the good music?"이라고 항변했듯 우리도 "왜 모든 좋은 책은 절판되는가?"라고 항변해야만 할 참이다.
책을 교환한 분이 자취방으로 초대를 해 이런저런 책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미나 시간에 늦게 생겼다. 허겁지겁 즐거웠다는 인사를 하고 시학 세미나에 도착했다. 오늘의 꺼리는 『고통의 축제』.
정현종 선생님의 요즘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분의 옛 시는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읽고 또 읽어도 지겹기는 커녕 깊숙히 빨려들기만 하는 시들이다. 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농담섞어 담화하면서 1학년들이 내심 든든해보였다. 시학이 반드시 존속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지만 이런 친구들을 보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세미나에 더 열심히 참여해야겠다.
술을 잘 못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쉽다. 나도 주량이 약한 편이긴 하지만, 술에는 어떤 힘이 있는 듯 한데……. 그들이 우리들과 좀더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술이 때로 아교역할을 하니까.
책과 시, 사람이 함께 한다면. 책과 시와 사람이라면 모두 좋다는 말은 아니다. 좋은 책과 좋은 시, 좋은 사람은 언제 만나도 좋을 일 아닌가.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좋은 시여!
그 책들을 들고 성남도서관에 가려니 두려웠다. 하지만 가야 했다. 8호선 단대오거리 역에서 내려 50미터쯤 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이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우산을 받쳐쓰고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올라갔다. 그 까마득한 길. 차도/인도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그길. 우산을 앞쪽으로 기울여 쓰고 갔다. 시야는 가려지지만 비도 좀 덜 맞을 뿐더러 들기도 그편이 더 편했다. 하늘아래 길이라고 얼마간 걷고나니 그 길의 끝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왼쪽으로 틀어 200미터 정도 가면 '희망대공원'이라는 글귀가 씌어진 쇠기둥이 있다. 쏟아지는 비가 콸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게다가 나는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쇼핑백이 들어 균형을 잃으면 지탱할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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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면 자꾸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휴- 언젠가 계단의 개수를 세어보았더니 153개였다. 세어볼 사람은 없겠지만 여기서 보이는 건 139개다.
여기서 맨 꼭대기, 중간에 평평한 공간이 있어 약간 들어가보이는, 화면에서 작게 보이는 계단의 맨 끝까지 올라가면 계단이 14개가 더 있다.

책 한 권 빌리고 반납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면, 이걸 보고 도립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라고 도서관을 여기다 둔 것일까. 공공기관은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마땅하다. 도서관은 더욱 그렇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따위의 경구를 아무리 새겨도 소용없다. 어릴 적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 그렇게 가르친 어른들이 도서관을 이런 곳에다 만드는 것은 표리부동이요, 위선 아닌가. 이런 도서관에서는 멋진, 봉그랑 여사의 소설이 나오기란 힘들 것이다. 그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이던데, 과연 우리나라 도서관을 배경으로 그게 실감이 날까.
약속이 있던 터라, 서울대 앞 녹두거리로 향했다. 인터넷 헌책방 커뮤니티 '숨어있는책'에서의 한 분과 책을 교환하기로 했던 것이다. 들뢰즈와 바슐라르를 교환했다. 두 책이 다 절판된 책이다. 초창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가수들이 "Why should the Devil has all the good music?"이라고 항변했듯 우리도 "왜 모든 좋은 책은 절판되는가?"라고 항변해야만 할 참이다.
책을 교환한 분이 자취방으로 초대를 해 이런저런 책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미나 시간에 늦게 생겼다. 허겁지겁 즐거웠다는 인사를 하고 시학 세미나에 도착했다. 오늘의 꺼리는 『고통의 축제』.
정현종 선생님의 요즘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분의 옛 시는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읽고 또 읽어도 지겹기는 커녕 깊숙히 빨려들기만 하는 시들이다. 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농담섞어 담화하면서 1학년들이 내심 든든해보였다. 시학이 반드시 존속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지만 이런 친구들을 보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세미나에 더 열심히 참여해야겠다.
술을 잘 못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쉽다. 나도 주량이 약한 편이긴 하지만, 술에는 어떤 힘이 있는 듯 한데……. 그들이 우리들과 좀더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술이 때로 아교역할을 하니까.
책과 시, 사람이 함께 한다면. 책과 시와 사람이라면 모두 좋다는 말은 아니다. 좋은 책과 좋은 시, 좋은 사람은 언제 만나도 좋을 일 아닌가.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좋은 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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