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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2003

자율학습 감독과 우리학교 이야기

며칠 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간 계속 3학년 담임을 하시다가 이번에 1학년을 맡으셨는데 이번에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고 하셨다. 안면근육마비. 직접 뵙지 못하고 통화만 해서 많이 불편하신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얼굴에 이상이 생기는 건 어쩐지 무섭다.

선생님께서 내게 화-금 4일간 자율학습 감독을 부탁하셨다. 처음에는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씀드렸지만 괜찮다고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왜 다른 선생님께 부탁하시지 않고 내게 부탁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편찮으신 선생님 부탁이기도 하고 해서 《생채기》판매하는 주간이지만 맡았다.

학교에 가서 알고보니, 전체 자율학습이 아니고 희망자만 하는 말 그대로 자율학습이었다. 그것도 전학급의 희망자가 아니라 선생님이 맡으신 학급에서 선생님께서 제안하셔서 하는 자율학습이었다. 저녁 9시까지. 아마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이나 (편찮으신 동안의) 임시 담임선생님께도 부탁드리기 어려웠던 것이었던듯 싶다.

학생 수는 (학원 수강 등의 사정으로) 매일 달랐다. 목요일에 가장 많은 9명이었고 첫날은 5명 정도였다.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다가 수돗가에서 씻고 들어와 공부하는 모습.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저들은 왜 공부를 할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들도 모르고 있기가 쉽다...

물론, 교실도 바뀐건 별반 없었다. 하얀 수정액으로 낙서된 교탁, 책상, 의자. 책상과 의자는 아직도 오래된 것에 연한 갈색 페인트를 칠해 사용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재미삼아 페인트를 벗겨낸 부분도 보였다. 칠판에는 "야·자 남은 사람"의 명단이 적혀있었다. 분명 저기 적혀 있는 학생 중 누군가가 쓴 것이겠지. 우리 땐 우유급식 같은 건 안 했는데 빈 우유곽이 몇 개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실 뒤쪽, 당구 다이를 세워놓은 것 같은 게시판에는 '환경을 보호하자',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문구가 몇 가지 자료와 함께 적혀있었다. 아마 연초에 환경미화심사를 할 때 만든 것이겠지. 다 썩어가는 대걸래 보관대도 그대로였다.

바뀐 건, 두 가지였다. 교실 앞쪽 한 켠에는 담임 선생님들이 쓰시는 듯한 컴퓨터가 들어와있었다. 교무실 책상에도 한 대씩 있을법한데 이건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도 안 쓰시는지 컴퓨터책상 위엔 먼지와 과제물 노트가 쌓여 모니터를 가리고 있었고, 책상 앞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교실 뒤쪽편에는 에어컨이 자리잡고 있었다. 놀라웠다. 어느 해의 어머니회가 기증했다는 문구가 아크릴명찰에 큼지막하게 씌어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우리 고등학교에서 에어컨은, 내가 1학년때까지만해도 3학년 자율학습실에만 있었다. 교무실에도 천정에 달린 선풍기로 만족해야 했었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교무실에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일반 교실에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도 에어컨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천정에 달린 4개의 선풍기가 360도 회전하면서 바람을 쏘아대는데, 한여름에는 오히려 뜨거운 바람이 나서 선풍기를 꺼야 했던 것이다. 수업시간에 한잠이라도 자다 깨면, 눈이 말라 선풍기를 피하기도 했다. 그나마도 사각死角이 많아 매주 분단이동을 하는 학급이 많았다.

어쨌든 에어컨이 들어오면서 수업환경은 그나마 나아졌을 것이다. 물론, 전기를 아끼기 위해 안 에어컨을 사용않는 날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의 문제점은 오히려 그런 시설이 아니었다.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지 시설이 아니다. 우리 학교가 훌륭한 선생님들을 얼마나 많이 떠나보낸, 비민주적인 구조를 가진 학교인가는 내가 졸업할 당시만 해도 평교사였던, 이사장의 손자이자 돌아가신 교장선생님의 아들인 독일어 선생님이 교감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 앉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교실에서 일지를 잠깐 보니 '새생활 실천 결의대회'라고 하는 얼토당토 않은 시위대를 꾸며 교내에서 시위하는 행사를 여직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연단演壇에 올라 "담배를 피우지 말자!"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말자!"하는 게 그것이다. 종종 한 학생이 나와 웅변을 하기도 한다.

교무실에 들렀을 때 보니, 제2외국어로 일본어가 새로 생겼는데 담당 선생님을 보니 성함이 눈에 익은 이름이었다. 한 분은 음악 선생님, 한 분은 독어 선생님. 동명이인인가 하여 퍼뜩 음악교과란과 독일어교과란을 보니 그 분들 이름이 빠져있었다. 독일어 선생님이셨던 분은 성실하신 분이라 그나마 마음이 놓였지만 음악 선생님이셨던 분은, 글쎄, 내가 판단할 위치도 아니고 예의도 아니지만…….

어쨌든 10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나마 1학년때부터 방과후에 남아 이런 환경 속에서 공부한다는 것. 그게 참 대견했다. 나는 그렇게 못했으니까. 그들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사사로운 말은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모두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꿈을 위해 대학에 들어오면, 대학도 비민주적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문학에 대한 꿈을 어렴풋이나마 갖게 된 건 고1 무렵이니까. 그러나, 글쎄…… 그들에게도 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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