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3
나른한 오후
엔디
2003. 4. 29. 00:12
나른한 오후 - 김광석
아 참 하늘이 곱다 싶어 나선 길 사람들은 그저 무감히 스쳐가고
또 다가오고
혼자 걷는 이길이 반갑게 느껴질 무렵 혼자라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난
어디 알만한 사람 없을까 하고 만난지 십분도 안 되 벌써 싫증을 느끼고
아 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아 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 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가끔이지만 사람들이 무척 싫어질 때가 있다. 전 인류를 사랑하면 할 수록 개개의 인간은 미워하게 된다는 도스또예프스끼의 통찰은 얼마나 적나라하며 진실한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원하고 내가 소중하다 혹은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들 중에서 진실로 나의 본질이 아니라 나의 실존을 중요하게 생각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람이, 너무 많다, 세상에.
"중립국.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 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불쌍하도다 나여 /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그래도 나는, 곧 언제고, 사람을 또 필요로 한다. 나른하다. 아니, 나른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