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3
4.19혁명 기념일에
엔디
2003. 4. 20. 01:10
4.19혁명 기념일에 산본 도서관에 놀러가서 브레히트를 읽었다. 시험기간이라 자리가 없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신기하게도 자리가 생겼다. 두 사람이 우리 앞에서 가방을 꾸려 돌아갔다.
김광규 시인이 옮긴『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을 읽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여러 시편들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끄는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울름의 재단사」는 몇 달 전에 읽고서 멋지다고 생각해 시학 까페에도 올려놓고 했던 것이지만, 오늘은 새로운 좋은 시를 발견(!)했다.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것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물론 시인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임해서 쓴 시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땅에 묻힌다는 것은 무언가의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꽃과 나비를 키운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땅과 동일시되고 있는 듯 하다...
(유종호 선생님의『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시란 무엇인가』에서 그의「연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후손들에게」, 「분서焚書」 등의 시들을 읽었던 탓에 나는 그를 극작가라기보다는 시인으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 '유럽현대문학'(김이섭 선생님 外), '독어독문학의 이해'(김용민 선생님) 같은 과목을 들으면서 그의 서사극, 교육극 등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
『四川의 善人』제하의 「서푼 짜리 오페라」, 「예스-맨과 노우-맨」, 「관습과 예외」, 「사천의 선인」희곡집도 거의 읽었는데, 마지막은 아직 덜 읽어서 모르겠고, 가운데 둘은 쉽고 재미있었으나, 서푼 짜리 오페라는 뭔가 잡다하고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독일 일반국민에게 교훈성보다는 오락성만을 가져다주었다는 해설이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나오는 길에, 또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도서 나누기 코너에서 책 몇 권을 집어들었다. 아베 프레보의『마농레스코』(삼중당), 그라스의『넙치』(학원사), 헤밍웨이의『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삼중당). 그리고 '모든 예술은 근본적으로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말로 유명한 월터 페이터의 산문집『페이터의 산문』(문예출판사), 그리고 《베를린 천사의 詩 (원제: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페터 한트케의『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마당)을 가져왔다. 모두 문고판이고 『넙치』만 큰 사이즈여서 무게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Jacob the Liar》는 Jurek Becker의 소설『거짓말쟁이 야콥Jakob der Lügner』를 영화화한 것이다. 로빈 윌리암스가 아니면 못할 제이콥 역이 훌륭하게 소화되는 것을 오늘 보았다. 김용민 선생님께 거짓말에 대해 제출했던 두어페이지 분량의 서평에 무슨 내용을 적었는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선/악이 그렇게 단순한 구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소설같다. 단순화함으로 복잡함을 드러내는 것은 이 소설(영화)의 장점이다.
한두 가지 불편한 점이 있어 익스플로러6.0을 지우고 5.5를 깔았다. 이제 자야할 시간이다. 20일 새벽 1시 10분.
김광규 시인이 옮긴『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을 읽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여러 시편들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끄는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울름의 재단사」는 몇 달 전에 읽고서 멋지다고 생각해 시학 까페에도 올려놓고 했던 것이지만, 오늘은 새로운 좋은 시를 발견(!)했다.
나의 어머니Meiner Mutter (1920)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것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물론 시인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임해서 쓴 시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땅에 묻힌다는 것은 무언가의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꽃과 나비를 키운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땅과 동일시되고 있는 듯 하다...
(유종호 선생님의『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시란 무엇인가』에서 그의「연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후손들에게」, 「분서焚書」 등의 시들을 읽었던 탓에 나는 그를 극작가라기보다는 시인으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 '유럽현대문학'(김이섭 선생님 外), '독어독문학의 이해'(김용민 선생님) 같은 과목을 들으면서 그의 서사극, 교육극 등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
『四川의 善人』제하의 「서푼 짜리 오페라」, 「예스-맨과 노우-맨」, 「관습과 예외」, 「사천의 선인」희곡집도 거의 읽었는데, 마지막은 아직 덜 읽어서 모르겠고, 가운데 둘은 쉽고 재미있었으나, 서푼 짜리 오페라는 뭔가 잡다하고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독일 일반국민에게 교훈성보다는 오락성만을 가져다주었다는 해설이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나오는 길에, 또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도서 나누기 코너에서 책 몇 권을 집어들었다. 아베 프레보의『마농레스코』(삼중당), 그라스의『넙치』(학원사), 헤밍웨이의『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삼중당). 그리고 '모든 예술은 근본적으로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말로 유명한 월터 페이터의 산문집『페이터의 산문』(문예출판사), 그리고 《베를린 천사의 詩 (원제: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페터 한트케의『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마당)을 가져왔다. 모두 문고판이고 『넙치』만 큰 사이즈여서 무게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Jacob the Liar》는 Jurek Becker의 소설『거짓말쟁이 야콥Jakob der Lügner』를 영화화한 것이다. 로빈 윌리암스가 아니면 못할 제이콥 역이 훌륭하게 소화되는 것을 오늘 보았다. 김용민 선생님께 거짓말에 대해 제출했던 두어페이지 분량의 서평에 무슨 내용을 적었는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선/악이 그렇게 단순한 구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소설같다. 단순화함으로 복잡함을 드러내는 것은 이 소설(영화)의 장점이다.
한두 가지 불편한 점이 있어 익스플로러6.0을 지우고 5.5를 깔았다. 이제 자야할 시간이다. 20일 새벽 1시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