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3
경기도립 성남도서관
엔디
2003. 4. 17. 13:58
8호선 단대오거리 역에서 내려 희망대공원 방향으로 1000미터 정도를 가면 경기도립 성남도서관이 있다.
거기에, 갔다.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성남도서관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단대오거리 역에서 희망대공원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도서관은 희망대공원 안에 있다, 그 꼭대기에. 새로 배운 불어를 1부터 10까지 반복해서 외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139개.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허리를 펴면 약간 간격을 두고 있어 아래서는 보이지 않았던 14개의 계단이 또 버티고 서 있다. 강노지말强弩之末이라는 제갈량의 계략인가.
포토샵과 드림위버 사용법을 설명해놓은 책들을 빌리러 갔다. "004.76/조94ㅍ"이 내가 찾는 포토샵책 번호였다. 서가에는 엉망이라고까지 하긴 좀 힘들었지만 어쨌든 순서가 조금씩 헝클어져 있어 책을 찾기가 수월치만은 않았다. 길벗에서 나온『PHOTOSHOP 6 무작정 따라하기』와 compeople이라는 데서 나온『웹디자인을 위해 다시 태어난 Dreamweaver 4』를 빌렸다. CD도 챙겨서 빌렸다. 다른 날은 우체국 끝나고 학교에 바로 가야하는데, 수요일은 여유가 좀 있어 힘들어도 도서관에 들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려는데 보니, 도서나누기 서가가 1층에 있었다. 필요없는 책을 가져다놓고 필요한 책을 꽂아두는 곳이다. 몇 달 전에 왔을 때는 괜찮은 책이 한 권도 없어서 한 권도 못 뽑아가고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모티머 J. 애들러의『독서의 기술』(범우사)은 조금 지루한 감은 있지만 신토피칼Syn-topical 독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토픽보다는 Syn이라는 접두어에 좀더 강조를 두고 싶다.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은 오히려 독서의 양과 질 모두를 떨어뜨릴 것 같다. 한 작가의 작품을 주욱 읽는다든가, 같은 주제의 책들을 이어 읽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아직 많은 책을 겪지 못한 나같은 사람은 말이다.
춘원 이광수의 『흙』(우신사)은 솔직히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책이다. 실은 『무정』도 반쯤 읽다 치워버렸다. 때로는 근대문학 작품이 덜 발전된, 재미도 없고 작품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지 아닌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르며, 그러니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백오십개 넘는 계단을 올라왔듯이 한 번 차근차근 층계를 밟아보아야겠다.
이기문 선생의 『國語史槪說(新訂版)』(탑출판사)은 꼭 사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책이다. 서상규 교수님의 '국어문법학사'과목을 들어 A+을 받았지만 문법'학'사는 알고 국'어'사는 모른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탑출판사 책 치고 디자인도 괜찮다.
『고리끼 단편소설선』(장백), 김원일『바람과 江』(문지)은 사실 잘 모르면서 가져왔다. 고리끼와 김원일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다.
E.M.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동문사)은 포스터의 이름을 보고 샀다. 흔히 등장하는 플롯의 예에 대한 것이라든가, 하여튼 그의 이름은 나름으로는 일찍 알았다고 해야할까.
너무 많이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다음주가 친구들 시험기간이고 하니 그 때 나도 좀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도서나누기 대장에 적고서 도서관을 나왔다.
천천히 층계를 밟아내려오며 생각했다. 도정일 선생 등이 펴고 있는 도서관 운동같은 것을. 도서관을 짓는다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까? '느낌표' 같은데서 정한 책을 무슨 전국민이 열광하며 읽는 나라에서 도서관 많아진다고 나아질까? 그래도 어쨌든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느는 일은 환영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도서관의 위치인 것 같다.
성남도서관은 좀 심한 경우라고 치더라도, 도서관 가기가 나쁘기는 온 나라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할 것 같다. 우리집에서 가까이 있는 정자동의 분당문화정보센터(성남시립)만 해도 걸어가려면 대개 차량중심으로 되어있는 신호등을 너댓번이나 지나야 하고, 그때마다 신호에 의해 제지당한다. 내가 걸음이 느린 편은 아닌데, 걸어가면 4,50분은 걸린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마땅한 버스가 없다. 차가 없는 사람은 가기가 무척 힘들다. 남산도서관은 시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있다. 용산도서관(서울시립)은, 황당하게도 남산도서관(서울시립)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있다. 그 근처에는 인가(?)가 없다.
내가 산본에 갔을 때 적잖이 놀란 것은 도서관의 위치였다. 산본에는 중심상가 바로 다음 블럭에 군포도서관(군포시립)이 있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계산해도 10분, 길어야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시설도 깨끗했다. 도.서.관.이.이.렇.게.편.리.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문제는 도서관의 위치에서 그치지 않는다. 급히 볼 책이 있어서 성남시내의 도서관 홈페이지를 다 뒤졌는데 그런 자료가 없다고 나온다. 그러면 서울시내의 도서관을 뒤지는 게 대개의 순서가 아닐까? 가장 가깝고, 또 예전에 살았던 곳이기도 해서 송파도서관을 먼저 확인했더니 그 책이 있다고 했다.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책이 워낙 급해서 만사 제쳐놓고 송파도서관엘 찾아갔더니 나는 서울특별시민이 아니라서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여기에 살았었다, 학교를 서울에서 다닌다, 한 번만 봐달라 꼭 필요해서 그런다"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도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인위적인 행적구획 때문에, 아직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에 그나마 있는 인프라마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다니.
앞에 '~립'이라고 달아놓은 건 의도적이었다. 이용자에겐 ㅇㅇ도서관이지 ㅇ립도서관이 아닐텐데도 행정편의주의는 그게 중심인가보다.
도서관에 오랜만에 들렀더니 잡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치고나온다.
거기에, 갔다.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성남도서관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단대오거리 역에서 희망대공원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도서관은 희망대공원 안에 있다, 그 꼭대기에. 새로 배운 불어를 1부터 10까지 반복해서 외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139개.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허리를 펴면 약간 간격을 두고 있어 아래서는 보이지 않았던 14개의 계단이 또 버티고 서 있다. 강노지말强弩之末이라는 제갈량의 계략인가.
포토샵과 드림위버 사용법을 설명해놓은 책들을 빌리러 갔다. "004.76/조94ㅍ"이 내가 찾는 포토샵책 번호였다. 서가에는 엉망이라고까지 하긴 좀 힘들었지만 어쨌든 순서가 조금씩 헝클어져 있어 책을 찾기가 수월치만은 않았다. 길벗에서 나온『PHOTOSHOP 6 무작정 따라하기』와 compeople이라는 데서 나온『웹디자인을 위해 다시 태어난 Dreamweaver 4』를 빌렸다. CD도 챙겨서 빌렸다. 다른 날은 우체국 끝나고 학교에 바로 가야하는데, 수요일은 여유가 좀 있어 힘들어도 도서관에 들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려는데 보니, 도서나누기 서가가 1층에 있었다. 필요없는 책을 가져다놓고 필요한 책을 꽂아두는 곳이다. 몇 달 전에 왔을 때는 괜찮은 책이 한 권도 없어서 한 권도 못 뽑아가고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모티머 J. 애들러의『독서의 기술』(범우사)은 조금 지루한 감은 있지만 신토피칼Syn-topical 독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토픽보다는 Syn이라는 접두어에 좀더 강조를 두고 싶다.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은 오히려 독서의 양과 질 모두를 떨어뜨릴 것 같다. 한 작가의 작품을 주욱 읽는다든가, 같은 주제의 책들을 이어 읽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아직 많은 책을 겪지 못한 나같은 사람은 말이다.
춘원 이광수의 『흙』(우신사)은 솔직히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책이다. 실은 『무정』도 반쯤 읽다 치워버렸다. 때로는 근대문학 작품이 덜 발전된, 재미도 없고 작품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지 아닌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르며, 그러니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백오십개 넘는 계단을 올라왔듯이 한 번 차근차근 층계를 밟아보아야겠다.
이기문 선생의 『國語史槪說(新訂版)』(탑출판사)은 꼭 사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책이다. 서상규 교수님의 '국어문법학사'과목을 들어 A+을 받았지만 문법'학'사는 알고 국'어'사는 모른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탑출판사 책 치고 디자인도 괜찮다.
『고리끼 단편소설선』(장백), 김원일『바람과 江』(문지)은 사실 잘 모르면서 가져왔다. 고리끼와 김원일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다.
E.M.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동문사)은 포스터의 이름을 보고 샀다. 흔히 등장하는 플롯의 예에 대한 것이라든가, 하여튼 그의 이름은 나름으로는 일찍 알았다고 해야할까.
너무 많이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다음주가 친구들 시험기간이고 하니 그 때 나도 좀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도서나누기 대장에 적고서 도서관을 나왔다.
천천히 층계를 밟아내려오며 생각했다. 도정일 선생 등이 펴고 있는 도서관 운동같은 것을. 도서관을 짓는다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까? '느낌표' 같은데서 정한 책을 무슨 전국민이 열광하며 읽는 나라에서 도서관 많아진다고 나아질까? 그래도 어쨌든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느는 일은 환영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도서관의 위치인 것 같다.
성남도서관은 좀 심한 경우라고 치더라도, 도서관 가기가 나쁘기는 온 나라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할 것 같다. 우리집에서 가까이 있는 정자동의 분당문화정보센터(성남시립)만 해도 걸어가려면 대개 차량중심으로 되어있는 신호등을 너댓번이나 지나야 하고, 그때마다 신호에 의해 제지당한다. 내가 걸음이 느린 편은 아닌데, 걸어가면 4,50분은 걸린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마땅한 버스가 없다. 차가 없는 사람은 가기가 무척 힘들다. 남산도서관은 시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있다. 용산도서관(서울시립)은, 황당하게도 남산도서관(서울시립)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있다. 그 근처에는 인가(?)가 없다.
내가 산본에 갔을 때 적잖이 놀란 것은 도서관의 위치였다. 산본에는 중심상가 바로 다음 블럭에 군포도서관(군포시립)이 있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계산해도 10분, 길어야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시설도 깨끗했다. 도.서.관.이.이.렇.게.편.리.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문제는 도서관의 위치에서 그치지 않는다. 급히 볼 책이 있어서 성남시내의 도서관 홈페이지를 다 뒤졌는데 그런 자료가 없다고 나온다. 그러면 서울시내의 도서관을 뒤지는 게 대개의 순서가 아닐까? 가장 가깝고, 또 예전에 살았던 곳이기도 해서 송파도서관을 먼저 확인했더니 그 책이 있다고 했다.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책이 워낙 급해서 만사 제쳐놓고 송파도서관엘 찾아갔더니 나는 서울특별시민이 아니라서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여기에 살았었다, 학교를 서울에서 다닌다, 한 번만 봐달라 꼭 필요해서 그런다"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도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인위적인 행적구획 때문에, 아직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에 그나마 있는 인프라마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다니.
앞에 '~립'이라고 달아놓은 건 의도적이었다. 이용자에겐 ㅇㅇ도서관이지 ㅇ립도서관이 아닐텐데도 행정편의주의는 그게 중심인가보다.
도서관에 오랜만에 들렀더니 잡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치고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