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2003
헤어짐
엔디
2003. 2. 26. 23:45
12시경에 근무가 끝났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근무지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어서 근무지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계장님께서 점심을 다같이 먹자고 하셨다. 까닭은 얼마간 우리 특수계에서 일했던 파트타임 두 사람이 그만두기 때문이었다.
자주 가던 서현역의 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먹고 반주를 했다. 3잔 반을 마셨더니 추어탕도 뜨겁고 해서 조금 뜨뜻해졌다. 술이 인화력을 갖는 것은 자체가 뜨거운 액체인 탓도 있지만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르는 의식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파트타임 두 사람과는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마주 앉게 되면서 술을 서로 따르게 되었고 그러다가 몇 마디이긴 하지만 얘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나중에 만나도 인사는 커녕 기억도 못했을 그 사람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해어질 수 있었다. 주저함이나 아쉬움이 적은 헤어짐을 나는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고모가 소개해 주셔서 하고 있었던 과외 중 하나가 끝났다. 개학을 하면서 학생이 바쁜 모양이었다. 하기야 중학교 2학년이 되는 그 친구는 매일 학원과 교재, 방문교습에 치여 사는 듯 하였다.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오늘은 어딜 가신다고 하시며 어제 롤빵을 선물로 주셨었다.
수업은 평소와 똑같았다. 그동안 내가 열올려 가르쳤던 관계사Relative 시험을 치르었고 reading을 하며 한 문장씩 해석을 유도해나갔다. 장문이 하나 있어 두 article을 마치자 수업은 끝났다. 기초영문법에서 주의해봐야할 곳 몇 군데를 짚어주고, 그래도 문법보다 독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인사를 나누고 그 집에서 나왔다. 주저함이나 아쉬움이 적은 헤어짐을 나는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라디오를 들으니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어제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문구의 소설을 나는 아직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관촌수필』(솔)과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를 샀다. 며칠 간 이 책들을 읽어볼 작정이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로는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가령 이것도 헤어짐이라면, 주저함이나 아쉬움이 적은 헤어짐을 나는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합평회에 가져갈 시가 완성되지 못 했다. 초고 정도는 안 되는 바 아니지만 쓰고나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시를 어떻게 가져간다는 말인가? 좀더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
자주 가던 서현역의 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먹고 반주를 했다. 3잔 반을 마셨더니 추어탕도 뜨겁고 해서 조금 뜨뜻해졌다. 술이 인화력을 갖는 것은 자체가 뜨거운 액체인 탓도 있지만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르는 의식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파트타임 두 사람과는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마주 앉게 되면서 술을 서로 따르게 되었고 그러다가 몇 마디이긴 하지만 얘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나중에 만나도 인사는 커녕 기억도 못했을 그 사람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해어질 수 있었다. 주저함이나 아쉬움이 적은 헤어짐을 나는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고모가 소개해 주셔서 하고 있었던 과외 중 하나가 끝났다. 개학을 하면서 학생이 바쁜 모양이었다. 하기야 중학교 2학년이 되는 그 친구는 매일 학원과 교재, 방문교습에 치여 사는 듯 하였다.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오늘은 어딜 가신다고 하시며 어제 롤빵을 선물로 주셨었다.
수업은 평소와 똑같았다. 그동안 내가 열올려 가르쳤던 관계사Relative 시험을 치르었고 reading을 하며 한 문장씩 해석을 유도해나갔다. 장문이 하나 있어 두 article을 마치자 수업은 끝났다. 기초영문법에서 주의해봐야할 곳 몇 군데를 짚어주고, 그래도 문법보다 독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인사를 나누고 그 집에서 나왔다. 주저함이나 아쉬움이 적은 헤어짐을 나는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라디오를 들으니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어제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문구의 소설을 나는 아직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관촌수필』(솔)과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를 샀다. 며칠 간 이 책들을 읽어볼 작정이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로는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가령 이것도 헤어짐이라면, 주저함이나 아쉬움이 적은 헤어짐을 나는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합평회에 가져갈 시가 완성되지 못 했다. 초고 정도는 안 되는 바 아니지만 쓰고나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시를 어떻게 가져간다는 말인가? 좀더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